02/02/2026
저희 아이엠재활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며 다시 일상의 희망을 만들어가고 계신
임O일님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내분의 사고와 무혈성 골두괴사 진단으로 인공고관절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 후 아이엠재활병원에서 본격적인 재활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5시간 이상의 재활치료와 치료사 선생님들의 전문적인 지도,
병동 의료진의 따뜻한 배려 속에서 몸과 마음은 조금씩 회복되어 갔습니다.
워커에 의지해 한 발씩 내딛는 시간 속에서
재활은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길임을 깨닫게 되었고,
이 여정은 다시 시작되는 삶과 희망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아이엠재활병원 #청주재활병원
#인공고관절재활 #재활수기
※임○일님(김○영 보호자)의 재활수기집※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왔던 우리 부부는 9년 전에 미원이라는 산골 마을로 귀촌을 했다. 바쁜 삶에서 벗어나 삶의 여유를 느끼면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텃밭에서 생명이 움트는 것을 보고 감동했고, 물소리, 새소리, 개구리 소리까지 모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느끼고 살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동안 도시에서 생활해 왔던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 점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삶 속에서 많은 것들이 어설프지만 우리는 잘 적응해 나갔고,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되어가는 느낌을 느낄 때마다 뿌듯했고 행복했다.
그러던 우리의 삶에 위기가 왔다. 2022년 6월 7일 아내가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일하다가 다친 것이다. 청주의 한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했고 8주 동안 입원해 있는 동안 목발에 의지하여 다녔다. 그리고 1년 후에 간단하다던 핀제거 수술을 받은 후부터는 통증 때문에 걸을 수가 없었고, 결국 MRI 촬영을 요구했다. 이틀 뒤, 무혈성골두괴사 라는 진단을 받고 인공고관절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병원을 나왔다.
아내가 받았을 충격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동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내를 위로하고 싶고, 또 용기를 줄 수 있는 한마디의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로도 위로나 용기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일터에 나가서도 내 머릿속에는 인공고관절 수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며칠이 지난 뒤 아내에게 “우리가 아무리 고민을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잖아. 당신이 겪고 있을 심적 고통을 다 가늠할 수는 없지만, 방법을 찾아야지. 회피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이 말을 꺼내기에도 큰 용기와 기다림이 필요했다. 아내는 “나도 두렵긴 하지만 수술해야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하고 말하였다. 큰 다짐이라도 한 듯, 아내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많이 무너져 있었던 우리의 일상에 조그마한 희망의 빛이 보였다.
아내와 나는 수술할 병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종합 해 서울에 있는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받기로 결정을 했고, 진료를 예약했다. 하지만, 내가 수술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내에게는 조심스러웠다. 그런 내게 아내는 지금까지가 더 두려웠지 이미 결정했는데 뭘 고민하냐며 걱정하지 말라고 웃어 주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난 후부터는 주변에 인공고관절 수술을 받고 재활하여 일상생활을 잘하고 있는 분들을 많이 보고 듣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우리의 마음이 점점 단단해져 갔다.
햇볕 좋은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목발에 의지해서 걷고 있는 아내에게 워커로 매일 걷기 연습을 하던 어르신이 아내가 처한 상황을 듣고서 “나도 90이 낼 모렌데 인공고관절 수술하고 지금 걷는 연습 중이잖아요. 걱정하지 마요. 젊은데 뭘.”하시며 아내를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이 “인공고관절 수술 그거 괜찮아. 난 두 쪽 다 했는데 지금 걸어 다니잖아.”,“재활만 잘하면 돼. 다른 병원 갈 것 없이 아이엠재활병원에 가. 거기가 제일 좋아. 내가 거기서 재활하고 나왔잖아. 치료사들 정말 잘해.”하며 확신에 찬 말씀을 하셔서, 우리부부는 그동안 고민했던 재활병원을 알아볼 필요도 없이 아이엠재활병원으로 하기로 했다.
며칠 후, 아이엠재활병원으로 갔다. 상담하고 직접 재활치료 현장과 병실 등을 둘러 보고 나니 믿음이 갔고 확신이 생겼다. 이곳이 아내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 같았다. 돌아와 아내에게 아이엠재활병원에서 본 것과 느낌을 전해주었고, 아내도 만족스러워했다. 수술할 병원과 재활병원을 다 결정하고 나니 우리 앞에 있는 안개가 확 걷히는 느낌이었다.
수술을 기다리던 중에 병원으로부터 수술 날짜가 정해졌다며 전화가 왔다. 나는 휴직 신청을 하고 아내의 입원을 위해 함께 서울로 올라갔고, 바로 입원했다. 아내는 걱정했던 수술을 잘 견뎌내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엠재활병원에 연락하여 퇴원하는 날 바로 입원하겠다고 확인 전화를 여러 번 했고, 퇴원 일자와 아이엠재활병원에 도착 예정 시각을 알려주면 병실을 준비해 놓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그리고 퇴원하는 날, 청주에 있는 아이엠재활병원에 입원했고 병실은 6층의 행복 병동으로 정해졌다. 병실에 들어와 짐을 풀고 나서야 그동안 쌓였던 긴장이 풀어졌고, 동시에 내 마음 안에서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하고 굳게 마음먹고 아내가 재활치료를 받는 동안 곁에서 세심하게 살피고 돕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예쁜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아내와 그동안 밀린 대화를 한참 하고 나서야 보호자 침대에 누웠다. 마음은 가벼웠는데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2년 전의 골절 사고로 응급수술을 받았던 기억부터 3번째의 인공고관절 전 치환술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큰 수술을 받고 재활병원에 입원하기까지의 기간 동안 있었던 여러 사건과 상황들이 떠올랐다. 아내가 혼자 온갖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외롭게 속앓이했을 때에 미처 아내의 속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미안함, 그럼에도 지금까지 잘 버텨준 데에 대한 고마움 등이 얽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첫날 밤을 보내고 아침 8시 반부터 시작되는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함께 재활치료실로 갔다. 재활치료실에는 재활치료를 받으려고 하는 환자의 휠체어가 끝없이 들어왔다. 시간이 되자 치료사 샘들은 자신의 환자 곁으로 가서 다정하게 인사를 하고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했고, 보호자들은 의자에 앉아 이를 지켜보다가 30분의 시간이 끝나면 다음 치료 장소로 옮겨주었다. 재활에 대한 바람과 기대, 또 정성이 가득해 보였다. 앞으로 이곳에서 펼쳐질 일들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그런데 나의 기대와는 달리 아내는 하루에 5시간 이상 하는 재활치료가 버거운 듯, 치료를 마치고 나면 침대에서 곤히 잠이 들어버렸고, 일주일 정도가 지나서야 재활치료를 적응하고 견뎌내는 듯했다.
그때부터 아내는 재활치료사 샘들에 대한 인상과 치료 내용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내는 치료에 잘 적응하였고, 치료사 샘들에 대한 호감과 신뢰가 매우 커 보였다.
그렇게 신뢰하는 치료사 샘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아내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체중도 점차로 늘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웃음도 많아졌다 .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워커에 의지한 아내와 함께 병실 밖에 나가 보았다. 재활을 위해 걷는 연습을 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워커, 지팡이나 보호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한발 한발 내딛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이곳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바로 우리와 같은 마음이기에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재활치료를 통해 아내의 몸이 점점 나아지고 마음의 여유도 생기면서 아이엠재활병원의 모든 것이 다 좋게 느껴졌다. 회진 때마다 원장님이 웃으며 “오늘도 화이팅!”이라는 구호에 적극호응하기 시작했고, 아내가 치료사 샘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동안에 나는 환자를 정성껏 간병하는 보호자들과 대화하고 공감하며 가까워졌다. 매일 아침 샐러드를 만들어 주기 위해 과일과 채소를 씻으러 가면 그 모습이 좋은지 보호자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격려해 주신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밀해졌고, 따뜻한 누님, 형님이 되어주셨다. 우리는 점점 아이엠재활병원에서의 삶이 익숙해졌고, 우리 집이라 생각하니 편안했다.
아내는 아이엠재활병원에 있는 동안 행복병동의 간호사샘들, 원무팀 선생님들의 친절함과 산재담당팀장님의 따뜻함과 세심한 배려에 편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다. 근력운동을 정말 세게 시킨다며 제 후배와 이미지와 말투가 꼭 닮았다고 아내가 신기해했던 송아영 샘, 언제 봐도 늘 바빠보였는데 그 와중에서도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찾고 배려해 주신 박규람 샘, “효영님을 만나는 것이 늘 기대돼요.”라고 말하며 아내의 상황을 듣고 꼭 필요한 동작과 운동을 가르쳐 주기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는 주연지 샘 등 치료사 샘들의 정성에 감사해 했다.
어느 날, 아내가 이제는 워커 없이도 걸을 수 있다며 내 앞에서 걸어 보았다. 그 이후로 짧은 시간이지만 꾸준히 복도에서 걷는 연습을 했다. 다만, 근력이 부족해 무리하면 안 된다는 치료사 샘들의 권유에 적당선을 스스로 찾아 나가며 조금씩 걷는 시간을 늘려 나갔다. 날씨가 좋을때엔 옥상에 있는 요셉의 정원에서 걷기 시작했고, 배운대로 근력운동도 꾸준히 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의 몸은 확실히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병실의 환자들도 날이 갈수록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보게 되면서 아내와 나는 우리가 앞으로 살면서 혹시라도 아프면 무조건 재활병원에 와야될 것 같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고, 그럴 때마다 서로 공감했다.
간병하는 나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 정도로 아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우리의 추억이 많이 묻어 있는 아이엠재활병원에서의 퇴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내의 퇴원일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그동안 가깝게 지냈던 분들이 아쉬움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늘 인생 후배로 따뜻한 마음으로 챙겨주시고 격려해 주신 김종혁 선생님과 사모님, 퇴원한다고 인사드리니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하신 일선 누님, 퇴원하는 날 아침, 직접 병실에 찾아와 아내를 안아주며 축하해 주신 숙자 누님, 퇴원한다고 하자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신 같은 병실의 김미선님 등 아이엠에 있는 동안 삶에 대한 큰 배움과 진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아픈 중에도 밝고 배려심 깊으며, 서로 도우며 평생 친구로 살기로 한 은경씨, 이름은 모르지만 진심으로 우리의 퇴원을 축하해 주신 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이엠재활병원에 입원하여 102일간 참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앞날을 장담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삶 앞에 좀 더 겸손하고, 우리 곁에 서로 도우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이웃이 있음에 감사하며 살고, 아픈 이웃의 마음에 공감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하며, 배려하고 연민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엠재활병원에 있는 동안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 같은 느낌으로 살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과 감정이 서로 전해지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진한 생활공동체였기에 퇴원한 지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엠생활공동체에서의 삶이 아내와 내 마음 안에 큰 여운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