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2025
—나의 행복_1
(…)스스로 행복해질 수 없는 자는 남의 행복을 위해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나는 나 자신 속에 행복해야 할 절박한 의무를 느낀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남에게서 빼앗아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행복은 가증스럽게 여겨질 뿐이다.
나로서는 배타적인 소유에 대해서는 늘 혐오감을 느꼈다. 나의 행복은 오로지 증여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죽음도 내 손에서 빼앗아 갈 것이 별로 없다. 죽음이 내게서 앗아 갈 수 있는 것이란 기껏해야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손에 넣을 수도 없는 자연적인 재물, 만인이 다 가질 수 있는 재물뿐이다. 특히 그런 것들이라면 나는 물릴 정도로 만끽했다. 그 밖에 나는 가장 잘 차린 산해진미보다는 주막집의 식사를, 담장을 둘러친 가장 아름다운 정원보다는 공원을, 희귀본보다는 산책 갈 때 마음 놓고 들고 다녀도 좋은 책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어떤 예술 작품을 오직 나 혼자서만 감상해야 한다면 그 작품이 아름다울수록 즐거움보다는 슬픔이 앞설 것이다.
나의 행복은 남들의 행복을 증가시키는 데 있다. 나 자신이 행복하려면 만인이 행복해질 필요가 있다.
―앙드레 지드 André Gide, 김화영 옮김, 『지상의 양식 Les Nourritures Terrestres』(민음사, 2007)中에서
___
20대 언젠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짝사랑 사연을 듣고 저녁을 먹는 내내 친구를 응원하고 설득하여 결국 고백하도록 한 적이 있다. 고백을 하자마자 달려온 친구의 희열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아, 나는 남을 행복하게 할 때 내가 행복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나의 삶을 관통했던 가톨릭의 교리—‘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30대 중반까지 나의 삶을 이끌었다. (이 성경 구절이야말로, 다시 되짚어보고 해석해 볼 문장이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나의 행복이 되는 일’은 남들이 봤을 때(남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고, 그것은 지드가 [새로운 양식]에서 쓴 “나 자신이 행복하려면 만인이 행복해질 필요가 있다”라는 문장과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문장에는 중력을 뒤집어야 할 만큼의 구심점의 차이가 있다.
_다음 포스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