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행복한아이연구소

서천석의 행복한아이연구소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부모를 위해 정신건강서비스 및 심리치료를 제공하는 연구소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음연구소는 현실에 존재하는 연구소는 아닙니다. 제가 글을 쓰는 공간입니다. 마음에 대한 글, 아이들에 대한 글, 아이를 키우고 함께 사는 이야기,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입니다.

08/01/2020



한 어머니가 아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 아파하셨다. 그 어머니의 경우 부부 사이가 오래 전부터 좋지 않다. 이제 더 이상 대놓고 아이 앞에서 다투지는 않는다. 다만 집안엔 늘 냉냉한 분위기가 감돌고 부부 사이엔 별다른 대화도 없다. 아이도 당연히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좋지 않음을 알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동화책을 읽어 주는데 아이가 한참이나 주인공 가족의 화목한 분위기를 부러워하였다.

엄마는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부부상담을 받아야 할까? 물론 그런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이제는 지쳤고 더 이상 어떤 노력을 해볼 동력이 없다. 그래도 아이 생각을 하면 내가 한번 더 희생을 해서라도,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제대로 된 가정을 보여주지 못하는 자신은 결코 좋은 엄마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좋은 부부 관계, 화목한 가정은 아이에게 당연히 좋다. 아이에게 행복감을 주고, 좋은 모델이 된다. 따뜻하고 즐거운 가정의 분위기는 아이에게 안정감과 신뢰감을 만들어준다. 그 어머니도 이야기하셨는데, 따뜻한 가정의 분위기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 중 하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 속상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정말 미안해 하실 일은 아니라 생각해요.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고, 더더군다나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고 엄마가 나쁜 엄마인 것은 아닙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노력을 해서 부부 관계가 회복된다면 더 없이 좋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안 된다고 해서 아이에게 미안해야 할 것은 아니에요."

이런 말은 그럴듯한 위로처럼 들릴 수 있다.

"부모가 부족해서 아이에게 좋은 부부 사이도 보여 주지 못하는데, 그래서 아이가 불안을 느끼고 뭔가 자기는 결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미안해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어머니의 항변이 마음 아팠지만 나는 내 뜻을 더 분명하게 말했다.

부모가 부족하면 아이에게 미안해야 하는 건가요? 부족하면 문제인 건가요? 부족하면 아이를 낳으면 안 되고 아이를 키우면 안 되는 것인가요? 우리는 모두 부족하고, 언제든 부족해질 수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돈이 없고, 어떤 사람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요. 어떤 부모는 몸이 불편하고, 어떤 부모는 아이를 이끌어줄 지식이 부족해요. 어떤 부모는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고, 어떤 부모는 사이가 안 좋고, 또 어떤 부모는 이혼을 하기도 하죠. 그 부모들은 모두 부족하니까 아이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일까요? 아이에게 미안해하고, 아이들은 자기가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억울해하며 자라야 하는 것인가요?

"선생님, 그래도 아이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이런 마음 고생을 안 해도 되었을 거 아니에요. 이렇게 마음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요. 더 나은 부모를 만났으면 아이가 더 잘 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기에 이렇게 말한다.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고, 아이가 더 행복하기를 바라기에 이런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고, 아니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조건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살아가는 존재다. 완벽한 조건이란 이상적인 것일뿐 대부분의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남들은 다 괜찮게 사는 듯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 보면 아픔과 결핍이 없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거의 모든 가정은 그마다의 어려움과 불행을 지니고 있다. 또는 어느 순간 불행의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결핍과 슬픔, 어느 정도의 불행은 그저 우리 삶의 보편적 조건이다. 특별하지 않다. 아이들 역시 여기 적응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만들고, 성격과 스타일을 만들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든다. 그러다 보니 저마다 어느 정도 기울고 비틀어지기 마련이지만 다 괜찮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어머니, 아이에게 미안해하면 아이는 착각할 수 있어요. 자신은 늘 행복해야만 하는 존재라고 착각하고,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누군가 자신에게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세상은 자신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착각할 수 있어요."

"어머니가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고 같이 마음 아파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미안하실 일은 아니에요. 어머니가 나름 노력을 해 보았고, 그래도 안 되는 일도 있잖아요. 그러면 어머니로서 할 일은 했고, 이제 아이는 그 조건에서,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조건에서도 얼마든지 잘 성장할 수 있어요. 그 조건이 아이에게 무엇을 만들어줄지 그건 아무도 몰라요. 아주 행복한 조건에서 성장한 아이가 매력적이고 능력있다는 보장도 없고요, 행복하다는 보장도 없어요.“

행복해야만 하는 사람은 없다. 결핍이 없어야 정상인 것도 아니다. 아이가 행복하지 않으면, 작은 결핍이라도 있다면, 그건 부모의 잘못이라 생각한다면 아이는 어릴 때부터 빚쟁이 심리를 갖고 살아가게 된다. 자기는 억울한 사람이다. 세상에 받아내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내게 빚지고 있다. 이렇게 해선 나르시시스트나 불평 불만이 많은 아이로 자랄 수 있다.

그뿐 아니다. 과도하게 미안해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심리적으로 밀리고 만다. 그래서 불필요한 것을 아이에게 주고, 필요한 경계나 제한도 두지 못한다. 미안한 마음에 과도하게 허용하고, 아이를 기쁘게 하려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준다. 정반대로 미안한 마음을 감추려고 아이에게 모질게 하거나 아이 감정을 들여다 보지 않으려고 아이를 멀리하기도 한다.

거의 모든 부모는 부족함 속에 아이를 키운다. 심지어 부족해 보이지 않는 부모에게도 부족함이 있다. 결핍의 부족, 무능의 부족인데 이 역시 아이들에겐 적잖은 짐이 된다. 나의 부족함이 아이에게 반드시 짐이 된다고 생각하지 말자.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부모는 결국 아이의 부족함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나의 부족함을 과도하게 부끄러워하고 감추고 싶어 하는 부모는 아이의 부족함도 부끄러워하고 어떻게든 없애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대단하지 않은 조건에서 인류는 태어났고 자라고 어른이 되어 왔다. 그리고 대단하지 않지만, 각자 한 사람으로서 대단한 삶을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니까. 누구와 바꾸거나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까. 나를 좀 더 받아들이자. 그리고 아이에게 말해줘야 한다.

“이런 부모지만 너를 사랑해. 그건 엄마의 약점이야. 하지만 엄마는 너를 사랑해. 그러니까 너는 잘 자랄 거야.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잖아.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 뭔가가 부족해서 못 자라는 것은 아니야. 자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잘 자라기 어렵지. 엄마는 네가 너를 좋아하고,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가려 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네게 모든 것을 주지는 못하지만 엄마가 못 주는 것을 또 네가 채워서 엄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 엄마는 그생각만 해도 참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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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연은 실제 특정한 분의 상담 사연은 아니고 몇 가지 사연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랍니다.

25/12/2019



어떤 아이는 감정을 다루는 것이 미숙하다. 특별하지는 않다. 팔다리를 조화롭게 움직이는 능력이 약한 아이도 있고, 주의를 빠르게 전환하기 어려운 아이도 있다. 불편한 감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추위든, 더위든, 어지러운 느낌이든 강하고 오래 느끼는 아이도 있다. 마찬가지로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유형이 있다. 기질적으로 감정의 전환이 어려운 아이도 있고, 불편한 감정이 일단 들어오면 극단적인 수준까지 빠르게 올라가는 아이도 있다. 기질적인 특성보다는 아이의 정서적 상태가 문제의 원인인 경우도 있다. 어떤 아이들은 부정적인 감정에 쉽게 사로잡힌다. 스스로에 대해 믿지 못하고 자신은 안 좋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안 좋은 아이니까 안 좋은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라 믿는다. 그래서 중립적인 자극조차 부정적으로 해석하고는 우울해한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는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무릇 좋은 일에도 나쁜 일은 얼마든지 끼어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었는데 그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기대한 것과 다른 선물일 수 있고, 기대에 미치지 않은 선물일 수도 있다. 동생의 선물이 더 나아 보일 수 있고, 수리가 필요한 문제 있는 제품을 받게 된 경우도 있다.

그래도 선물을 받았으니 아쉽더라도 고마움부터 느꼈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행복하게 살 테니까. 하지만 부모의 바람은 그저 바람일 뿐. 서운한 마음에 입을 삐죽대다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부터, 화가 나서 씩씩대다 펑펑 우는 아이도 있고, 급기야는 선물을 집어 던지면서 ‘산타 할아버지 미워.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할 거야,’ 외치는 아이도 있다. 감정을 다루는데 미숙한 아이라면 여지없다.

부모는 처음에는 조금 달래준다. 좋은 날이니 좋게 풀고 싶어서다. 하지만 아이가 얼른 기분을 바꾸지 못하면 슬슬 화가 난다. 부족한 대로 애써 준비한 것인데 이 녀석은 고마운 줄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 한편에는 억울한 마음도 올라온다. 좋은 말로 위로하는데도 기분을 못 바꾸는 것을 보자니 이렇게 좁은 심통머리로 세상을 어찌 살려고 그러나 걱정이 든다.

그래서 너 그렇게 계속 울면서 심술부리면 산타 할아버지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할 거라며 위협도 하고, 이런 선물도 못 받는 어려운 아이에게 갖다 줘야겠다며 선물을 가로채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그럴수록 아이의 울음소리는 더 커지고 기분은 더 나빠진다. 성탄절 아침은 엉망이 되기 마련이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기 마련이다. 잘 되길 기대했는데 엉망이 된 날. 아이의 기대도 엉망이 되었고, 부모의 기대도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럴 수 있다. 그런 날도 있기 마련이다. 다만 아이가 감정을 다루는데 취약하다면 다음에는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아이는 지금 자라고 있다. 아주 천천히 성장하고 있다. 지금은 너무나 부족하다. 그래도 온몸으로 경험하며 조금씩 자라고 있다. 지금은 서운한 마음, 아쉬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처음 맞는 겨울바람처럼, 처음 경험하는 뜨거운 물처럼 어떻게 감당할 줄 모른다. 그저 압도될 뿐 대응할 수 없다. 스스로 통제하기는커녕 설명해 내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배우는 것이다. 다른 아이처럼 감정을 작게, 약하게 느낄 수 있다면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몇 배로 증폭해 들어오지 않는다면 잘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런 행운이 이 아이들에게는 따르지 않았고 그래서 힘들다. 아이도 힘들고, 그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도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면서 아이들은 배운다. 온몸으로 배운다. 익숙해진다.

아이의 나쁜 감정 상태를 빨리 바꿔주려 할 필요 없다. 그저 그럴 수 있겠다고 봐주면 된다. "서운하구나, 네 마음 몰라줘서 서운하구나, 바라는 대로 안 되어 속상하구나, 많이 바랐는데 그렇게 안 되니 슬프지. 너를 슬프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산타 할아버지에게 화도 나고. 그래 마음대로 안 되면 서운하지. 내가 바라는 건 왜 안 되는 거야 싶어서 속상하기도 하고. 그래 그럴 때가 있지. 우리 OO이 마음이 그렇구나."

산타 할아버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변호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 이런 선물도 못 받는 아이도 있다고 진실을 말해줄 필요도 없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충분하다. 아니 나중에 해야 한다. 당장 기분이 안 좋을 때는 그저 진지하고 짧은 위로, 그리고 살짝 다독여주고, 그냥 그 감정을 충분히 느끼게 두면 된다. 속상하고 서운하고 억울하고 기분 나쁘지만, 그런 나쁜 기분도 시간이 가면 약해진다. 당장은 펄쩍 뛰고 어디에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나쁘지만 그렇게 나쁜 기분도 시간과 함께 사라진다.

모든 감정은 시간과 함께 사그러진다. 강도가 약해진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방해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충분히 경험하게 둬야 한다. 나쁜 기분의 끝에는 아무 것도 없고, 결국 기분을 바꿔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아이가 경험해야 한다. 공감해주고, 살짝 토닥여주지만 결국 혼자 머물게 둬야한다. 다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오라고, 그러면 또 토닥여주겠다고 말해두면 된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면 막아야 한다. 다만 혼자 괴로워하는 것은 뭘 하든지 그대로 둔다. 소리 내어 울든, 베개를 주먹으로 치든 그대로 둔다. 이게 뭐 그럴 일이냐고 말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면, ‘네가 속상하니까 그러는 건 알겠어. 하지만 나쁜 기분을 사람에게 풀면 안 되는 거야. 동물에게 풀어도 안 되고. 사람과 동물은 다치니까.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자’ 이렇게 말하고 혼자 겪어내게 해야 한다.

나쁜 감정을 가진 채 그대로 두기. 측은한 마음으로 안타까워하지만 애써 풀어주지 않기. 곁에 있지는 않더라도 근처에 머물기. 네 곁에 있고, 네가 힘든 것 알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그 러면서 그저 지켜보기.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물론 아이에게는 기분 전환 기술도 가르쳐야 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도 가르쳐야한다. 다만 가르침은 다음에 할 일이다. 당장 감정이 상해 어쩔 줄 모르는 아이에겐 어떤 진지한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르침은 편안할 때, 기분이 좋을 때 해야 한다. 부모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가르치기 어려울 때 굳이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정작 가르침이 필요할 때는 손을 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감정을 다루는데 미숙한 아이를 키우는 것은 힘든 일이다. 늘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느낌이다. 그렇다.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폭탄은 차차 폭발력이 약해지는 폭탄이다. 더 자극하지만 않는다면, 아이가 자신을 싫어하게 만들지만 않는다면, 세상을 믿지 못하게만 만들지만 않는다면 물에 젖은 폭탄처럼 힘을 잃을 것이다. 버티고 기다리면서 견뎌주는 부모의 마음이 아이에게 스며들 것이다. 부모와의 시간이, 아이가 느낀 경험이 물처럼 스며들며 폭발력은 조금씩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언젠가는 더 이상 터지지 않는 날이 온다. 덤덤해지는 날이 온다.

30/10/2019



아이에게 지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이야기하고, 더 나은 방법을 말해주는 것은 좋다. 다만 비난하는 말, 책망하는 말은 아이의 기분만 상하게 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

"너는 집에 있는 지우개 하나 못 가져가니? 지우개가 없으면 공책 정리가 잘 되겠어? 그렇게 생각없이 행동해서 어떻게 해. 벌써 나이가 6학년인데..."

이렇게 말하려면 부모도 힘들고, 듣는 아이도 힘들다. 그냥 간결히 말하면 된다.

"다음에는 지우개를 꼭 가져가자."

또는

"아빠는 학교에서 네가 당황하지 않게 지우개를 가져갔으면 좋겠다."

또는

"지우개 없어도 상관 없어? 별 문제없으면 안 챙겨도 되는데. 필요한 것이면 신경쓰자."

이 정도면 충분하다. 간결히 말하자. 비난하는 말을 섞지 말자. 비난하는 말을 섞으면 아이가 얼른 반성할 것만 같지만, 그래서 잘못을 빨리 고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문제를 꼬이게 한다. 부모에게 자기 문제를 숨기게 만든다. 부모에 대한 반감을 만들어 엉뚱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23/06/2019



어릴 적 그리도 가까웠던 아이였는데 중학교에 가고, 할 일도 많아지고 그러면 조금씩 멀어집니다. 부모는 챙길 것은 많고 해줘야 할 말은 많은데 막상 말을 꺼내려면 쉽지 않습니다. 아이가 과연 내 말을 들을 것인지 걱정이 앞서지요.

아이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이전에 무엇보다 아이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가까운 관계는 갈등 없는 관계, 서로 깊이 이해하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가족으로서 서로를 느끼고 의지하고 그 속에서 위안받고 즐거움도 나누는 관계일 뿐이죠. 늘 좋지만은 않지만 좋은 순간이 있는 관계입니다. 그래야 소통도 더 잘 이뤄지고 청소년 자녀가 온통 부담으로만 내게 다가오지 않고 행복도 주게 됩니다.

청소년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다음 중 몇 가지를 같이 하고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세요.

- 아이가 집에 왔을 때, 또는 나갈 때 핸드세이크나 가벼운 포옹하기.
- 밥을 먹으면서 그날의 가장 좋았던 일, 웃겼던 일에 대햐 이야기하기. 때로는 짜증나는 일을 말할 수도.
- 아이와 함께 대중가요를 불러 보기, 또는 아이가 부르는 것을 들으며 박수 쳐주기.
- 가볍게 산책하면서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 먹기
- 탁구, 배드민턴, 볼링, 캐치볼, 자전거 타기, 스트레칭 등 가벼운 운동을 함께 하기.
- 화장에 관심이 있다면 서로 화장해주기 또는 옷 입으며 스타일링하는 것 봐주며 칭찬하기.
- 같이 보드게임이나 디지털 게임을 즐기기.
- 함께 식물을 키우거나 반려동물을 키우며 그에 대해 대화 나누기. 또는 동네를 거닐면서 변화하는 자연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 영화나 드라마를 같이 보면서 또는 보고 난 후 수다 떨기. 각자가 좋아하는 유튜브 클립을 같이 보는 것도 좋음.
- 팥빙수나 떡볶이, 치킨 등을 하는 소박한 맛집을 찾아서 먹으러 가기.

여행이나 캠핑, 함께 하는 자원봉사 등 더 계획과 수고가 필요한 것들도 있겠지만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와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아이와의 삶은 무거운 순간이 많습니다. 부모는 때로는 아이가 듣기 싫은 말도 해야 하죠. 하지만 인생은 의무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교감을 나누고, 지지가 되어야 하고, 재미가 필요하죠. 뭐든 균형이 중요합니다. 그를 위해서 작은 실천은 정말로 많이 필요하고요.

지금 저 열 개 중 몇 개나 실천을 하고 있는지요? 다음 달에는 몇 개를 실천하고 있을 수 있을까요? 만약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면, 아이와의 대화가 막힌 것만 답답해하고 있다면 저 중에 한두 개라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가볍게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02/05/2019

세계보건기구는 어린이의 정신건강 문제 중 가장 중요한 문제로 ADHD를 꼽고 있습니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라고 번역하는 ADHD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어떤 아이들이 ADHD이고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앞으로 몇 주간 어린이와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다루려 합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이번 편에서는 틱과 뚜렛병 이야기를 다뤘습니다.아이들이 틱을 하면 참 많이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죠. ...
03/04/2019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앞으로 몇 주간 어린이와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다루려 합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이번 편에서는 틱과 뚜렛병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아이들이 틱을 하면 참 많이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죠. 그 걱정과 불안에 기대어 엉뚱한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도 많고 그들의 부추김 때문에 인터넷에는 온갖 잘못된 정보가 난립하고 있습니다.

틱과 뚜렛병에 대해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하는 정보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아울러 다음 편에서는 산만한 아이들, ADHD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생각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는 분들이 이곳과 오디오클립 댓글을 통해 질문 주시면 최대한 다뤄보겠습니다.

주변에 틱 때문에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있다면 많이 알려주세요.

이번 주부터 소아청소년정신과에서 쉽게 만나는 아이들의 문제를 다뤄봅니다. 그 첫 시간은 틱장애와 뚜렛병에 대한 이야기! 아이가 반복해서 눈을 깜빡이거나 얼굴을 찡그리면 부모들은 무척 놀랍니다. 걱정을 하죠. 어서 사.....

지난 두 번의 오디오클립에 애착육아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애착육아는 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강력한 육아 트렌드였다. 이론적 근거가 그리 탄탄하지 않은데 마치 진리인 양 이야기되어 왔다. 대중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
30/11/2018



지난 두 번의 오디오클립에 애착육아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애착육아는 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강력한 육아 트렌드였다. 이론적 근거가 그리 탄탄하지 않은데 마치 진리인 양 이야기되어 왔다. 대중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와의 '애착'을 잘 만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의 말을 해왔다. 물론 그런 흐름이 오래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십여 년 전부터 '애착 육아' 과잉 유행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졌고 이론적인 면에서도 반박이 있어왔다.

나는 애착육아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면 오히려 부모와 아이의 애착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생각이 아니다. 임상에서 이와 관련한 관찰을 많이 해왔다. 그뿐 아니다. 체벌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훈육 방법의 개선을 가져오지 못하듯 애착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아이의 정서적 문제 해결 방법의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 때리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다른 훈육법을 고민하고 연습할 필요 없다. 애착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면 아이의 어려움, 예를 들어 자존감 문제, 사회성 문제, 불안 문제를 도울 다른 방법을 고민하지 않게 된다. 그저 애착, 애착, 부모의 노력, 노오력을 강조한다.

애착육아의 지나친 유행에 대한 문제 제기, 부모라면 한번쯤 들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벌써 일찍 들은 분들이 게시판에 간증성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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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말씀을 듣고나면 "내가 잘하고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요. "이만하면 됐다 나도 아이도 잘자라고 있다" 하면서요.^^ 늘 나를 자책하게 하는 육아이론들이 많았는데 진심으로 위로받는 마음입니다.

'아이와 나' 하이라이트 방송이었다고 생각될 만큼 한 마디 한 마디 중요한 내용이었고. 저 역시 애착육아에서 많이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고민되는 부분들에 대한 해답을 주셨던 것 같아요!!!

엄마에게 죄책감만 안기는 애착육아 신화! 근거 있게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흑흑 (제왕절개로 낳아 분유로 키우고 복직한 워킹맘 올림)

오늘 처음으로 오디오 클립을 들었네요~ 혹시 불안정 애착 아닐까 하며 걱정 많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감사해요~

애착육아 편 들으면서 '쿵'하고 머리를 친거같은 그런 약간의 충격 (?)도 받으며 3번 반복해서 세세히 들었습니다^^ 지금 16개월 아이 키우는 엄마인데.. 조금더 빨리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신생아기에 그리 심한 산후우울증도 앓지않고 조금 더 여유 있게 마인드컨트롤 하며 조금 즐기며 신생아를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네요. 이제라도 알았으니 참 다행입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입니다. 워킹맘인데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저는 너무 큰 부담감으로 아이를 대한 듯 하고, 몸에 힘이 들어가 있으니 온전히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들고 외로웠던듯 해요. 자연스럽게~ 지금의 과정을 즐겨봐야 겠어요! 늘 감사합니다. ^^

애착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래야 아이와 부모가 더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애착이 육아에 오히려 부담을 준다면 이것은 더 이상 육아이론일 수 없습니다. 애착육아.....

어린 시절 자신이 모범생으로 살아왔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런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바라볼 때 '옳고 그름'의 잣대를 먼저 들이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행동이 좋은...
29/06/2018



어린 시절 자신이 모범생으로 살아왔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런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바라볼 때 '옳고 그름'의 잣대를 먼저 들이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행동이 좋은 행동인지, 나쁜 행동인지를 판단하고 아이가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고 있는지 남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태도를 갖고 있는지를 판단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의 행동을 도덕적 기준을 들이대 판단부터 합니다.

물론 아이들은 도덕을 배워가야 하고, 좋은 덕목을 익혀가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는 아직 판단의 잣대를 들이댈만큼 자라지 못했습니다. 도덕적 태도를 키우기 위한 기본기가 될 자기 행동을 돌아보는 능력,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능력도 부족합니다. 유아기의 아이가 하는 행동은 그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대응 방식, 이전에 우연히 써봤는데 효과가 있던 대응 방식, 남이 하는 것을 곁눈으로 보고 배운 방식을 되풀이 할 뿐이죠. 어느 방식을 선택하는지에 있어서 도덕적 기준은 전혀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부모가 먼저 할 행동은 아이의 행동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이어선 곤란합니다. 아이가 어느 수준인지 이해하고 아이를 도울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입니다. 지금 아이가 어디까지 자랐고, 어느 부분이 안 되는지 고민하고, 그 부분이 자라나도록 도울 좋은 방법이 없을지 찾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물론 그런 고민이란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습니다. 답이 모호하고, 찾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시간이 필요한데 당장 아이는 눈앞에서 좋지 않은 행동을 저지르니 야단부터 치기 쉽습니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줘야겠지요. 그러나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 행동을 앞으로 하지 않게 하려고 더 세게 야단쳐야 효과는 없습니다. 물론 트라우마를 남길 정도로 강하게 밀어붙이면 효과는 있겠지만 분명 부작용도 남겠지요. 얼른 답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찾아봐야 합니다. 아이를 어떻게 도울지. 어떻게 성장시킬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이고 성숙입니다. 단죄와 처벌이 아닙니다. 부모가 해줄 일은 돕는 일입니다.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요.

사실 판단과 평가는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이 사회가 합니다. 그들은 아이를 돕지 않습니다. 그들의 일이 아니니까요. 그럼 누가 아이를 도울까요? 돕지 않아도 아이는 또 겨우겨우 성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도울 수 있다면, 그래 준다면 분명 더 낫겠지요. 누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번 주 네이버 오디오클립 1회는 이에 대한 사연을 다루었습니다. 물론 주제가 꼭 이것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요. 어쨌든 같이 한번 들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매주 오디오클립은 업데이트 됩니다. '구독'해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와 나 실전편 첫회는 50개월 남자 아이의 사연을 갖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서는 아이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번 회는 아이의 문제를 정리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배워...

분노를 불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분노가 활활 타오른다는 말도 있고, 화를 식히기 어렵다는 말도 쓴다. 화가 나면 머리로 피가 몰리고 온몸이 달아오르니 불에 비유하기가 그럴 듯하다. 불이 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
04/06/2018



분노를 불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분노가 활활 타오른다는 말도 있고, 화를 식히기 어렵다는 말도 쓴다. 화가 나면 머리로 피가 몰리고 온몸이 달아오르니 불에 비유하기가 그럴 듯하다. 불이 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탈 수 있는 재료와 불씨가 있어야 한다. 성냥이나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고 해도 연료가 없다면 불이 나지 않는다. 마른 장작이든, 종이든, 석탄이든 무언가 있어야 불이 붙는다. 기름이나 가스가 있다면 큰 불이 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연료만 있어선 곤란하다. 불씨가 필요하다. 불꽃을 내서 연료에 붙을 붙여야 한다. 연료의 휘발성이 크다면 작은 불씨도 큰 불로 이어진다. 잘 타지 않는 재료에 불을 붙이려면 꽤 오랫동안 불씨를 유지해야 한다.

분노 역시 마찬가지다. 분노가 타오르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연료와 불씨. 분노의 연료는 스트레스다. 고통이다. 힘든 상황은 분노가 타오를 수 있는 연료다. 특히 나의 소중한 것을 빼앗긴 고통이 가장 좋은 연료다. 소중한 것은 여러 가지다. 물건도 될 수 있지만 사람도 가능하다. 시간을 빼앗기거나 내 영역을 빼앗긴 것, 나의 위신과 자존감에 손상을 입었을 때도 분노는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분노의 불씨는 무엇일까? 분노의 불씨는 판단이다. 상대로 인해 내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상대가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괴롭지 않을 텐데. 저 사람이 그렇게 행동해서 내가 괴로운 거야. 저 사람 때문이야. 나는 피해자이고, 저 사람이 가해자라는 생각이 분노에 불을 붙인다. ‘내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 그 고통이 저 사람으로부터 시작한 거야. 저 사람이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 정도로 괴롭지는 않을 텐데. 저 사람이 나를 도와주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해서 내가 이렇게 괴로운 거야.’ 이러한 생각을 분노의 촉발 사고라고 한다. 분노의 방아쇠를 당기는 생각이다.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힘들다. 아이가 발로 머리를 차서 여러 번 깼다.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는데 컨디션이 더 나쁘다. 감기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하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저녁에는 아이 밥을 차리다가도 깜빡 졸았다. 아이 밥 먹이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입이 까다로워 열심히 만들어 주는 데도 싫어하는 것이 조금만 있어도 먹지 않으려 한다. 입에 넣어줘도 뱉어낸다. 그럴 때면 화가 난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만든 건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지 제대로 좀 먹겠니? 맨날 군것질만 하려고 하고. 체중이 안 늘어서 속상하다. 꼭 집에서 애 굶기는 것만 같아 남 보기도 창피하다.

“제발 좀 먹어봐” 다그쳐 보는데, 아이가 고개를 돌린다. 오늘은 이것은 다 먹이고 싶다. “너 이거 안 먹으면 오늘은 못 일어나는 거야. 엄마가 그림책도 안 읽어줄 거야.” 아이는 입을 삐죽인다. 째려보는 내 눈빛에 벌써 눈물이 맺힌다. “이게 울 일이야. 엄마가 널 위해 이렇게 맛있게 힘들여 만들었으면 예쁘게 먹어야지. 엄마는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어서 빨리 먹어.” 그래도 입을 벌리지 않는다. 수저에 밥을 떠서 아이 얼굴에 갖다 댄다. 아이가 도리질을 하다 수저에 올린 밥이 엎질러졌다. 밥풀이 사방에 흩어졌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온다. “너 이럴 거야? 이렇게 니 멋대로 할 거야?”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으려 손을 내밀었더니 아이가 피하다 컵이 엎질러졌다. 물이 쏟아지고 바닥은 엉망이 되었다. 이걸 또 언제 치우나? 이 나쁜 녀석.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집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이다. 여기서 분노의 재료는 무엇일까? 우선 엄마의 피곤이다. 엄마는 지쳤다. 그렇잖아도 지치는 것이 육아인데, 전날은 잠도 제대로 못 자니 지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걱정도 있다.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아 걱정이다. 체중이 늘지 않으니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성장이나 건강도 걱정된다. 나름 노력을 하고 있지만 효과가 없으니 무력감이 든다. 여기에 불을 붙인 촉발 사고는 무엇일까?

아이는 잘 먹어야 하는데 먹지 않는다. 엄마가 노력했으면 보답을 해줘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 엄마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한다. 아주 나를 갖고 노는 것 같다. 언제까지 나는 이 아이의 하녀처럼 살아야 할까?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다. 얘 때문에 내 인생은 어디로 다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는 가해자고 엄마는 피해자가 되었다. 엄마는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아이에게 돌리고 있다. ‘네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지금 이렇게 괴롭지 않을 텐데.’ 그러니 아이가 미워지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겪는 고통을 만드는 장본인이니까. 분노는 우리에게 싸울 힘을 준다. 화가 나면 일시적으로 우리의 에너지는 올라간다. 싸우기 위해서. 싸워서 상황을 해결하고 고통을 끝낼 수 있다. 이것이 분노의 역할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와 싸워봐야 어떤 상황도 해결되지 않는다. 고통도 끝나지 않는다. 만약 엄마가 화를 내서 아이가 행동을 바꾼다면 엄마의 화는 이유가 있다. 나쁘지 않다. 그런데 대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분노는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그렇다면 화를 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글은 기초편이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은 재료를 치우는 쪽이고 다음은 불씨를 감추는 쪽이다. 이중 더 중요한 것은 재료를 치우는 쪽이다. 재료가 휘발성이 높으면 불씨 관리를 잘 해도 불이 붙기 쉽다. 아주 작은 불씨에도 큰 불이 난다.

위의 상황에서 재료는 피로와 걱정이었다. 피로는 어쩔 수 없다. 늘 피해갈 수는 없다. 피곤한 날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될 때가 많다. 그런데 그 날은 아이와 다투지 않으려 해야 한다. 밥 한 끼 제대로 안 먹여도 된다. 다툼이 될 상황은 미리 피한다. 일관되게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건너뛰어도 될까? 괜찮다. 화내고 폭발하느니 그냥 넘어가는 편이 낫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다. 그리고 차선은 매우 훌륭한 선택이다.

사전 조치도 도움이 된다. 피로해질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미리 막아야 한다. 에너지를 적게 쓸 수 있도록 집의 동선도 바꾸고, 아이와 잠자리도 분리한다. 집에서라도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체력도 키우면 좋다. 요즘은 짧게 할 수 있는 홈트레이닝 영상도 많다. 어차피 아이는 잘 먹지도 않는 것 내가 먹는 것에 더 신경을 써본다.

걱정도 줄여야 한다. 아이가 안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그냥 아이가 그렇게 타고 난 것이다. 그것을 부모가 빠르게 바꿀 방법은 없다. 엄마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멍청한 탓이다. 아이 키우기에 대한 최근의 발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채 고정 관념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시선에 내가 흔들릴 필요는 없다. 어릴 때 안 먹는다고 안 크는 것도 아니다. 저성장을 하다가 감각의 예민함이 차차 무뎌지면서 식사량이 늘고 최종적으로는 잘 큰 경우가 많다. 공연히 먹는 것으로 싸우면 이차적인 문제가 생겨서 안 먹는 시간만 더 길어진다. 이런 내용을 보고 듣고 반복해서 상기해야 걱정을 줄일 수 있다.

그래도 완전히 재료를 다 감출 수는 없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얼마든지 피곤할 일이 많다. 걱정도 생각보다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특히 타고 나기를 걱정이 많은 성향이라면 더욱 그렇다. 평소에는 마음을 잘 다스리고 살았지만 친정 엄마가 애가 왜 이렇게 부실해 보이냐고 한 마디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얼마 전에 본 글에는 입맛이 까다로우면 선생님들도 싫어해서 학교 적응이 어렵다고 되어 있었다. 학교에 갈 때까지 계속 이러면 어쩌지 걱정이 든다.

이렇게 재료가 쌓였다고 해도 불씨 관리만 잘 하면 분노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아이는 나를 괴롭히려고 안 먹는 것이 아니다. 아이도 잘 하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다. 왜 안 되는지도 아이는 모른다. 그냥 안 되는 것이고 그래서 아이도 괴롭다. 아이는 가해자가 아니다. 나도 가해자가 아니고 아이도 그렇다. 아이와 나, 우리 둘은 지금 함께 힘들다. 이 시간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빨리 끝나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시간동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아이도 보이지는 않지만 자기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두뇌의 곳곳이 자라며 연결이 원활해지고 기능도 나아지리라. 기능이 나아져야 유연해지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난다. 화를 내서 이 상황이 끝날 수 있다면 화를 내도 괜찮다. 하지만 나는 안다. 화를 내도 상황은 끝나지 않는다. 괴로움만 더해질 뿐. 여유 있을 때 이 상황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또 찾아보자. 세상에는 다양한 작은 지혜가 있을 테니까. 다만 오늘은 힘드니까 찾아볼 때는 아니고 일단 쉬자. 다음에 해도 괜찮다.

아이는 엄마의 상전이 아니다. 상전에게 마구 소리를 지르고 손까지 대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아이 때문에 엄마의 인생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인생을 결심한 사람은 엄마다. 여기에는 괴로움이 따르지만 또 행복도 있다. 통제력을 잃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싸워서 통제력을 회복해야 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화를 낸다. 화가 에너지를 주니까. 하지만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 아니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다. 나도 아이도 한계를 가진 존재다. 그 한계를 깊게 인정해야 우리는 분노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다.

[BY 서천석의 아이와 나] 분노를 불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분노가 활활 타오른다는 말도 있고, 화를 ...

07/05/2018



아이가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릴 때는 무시하는 방법을 쓰라고 이야기한다. 훈육의 기본에 해당한다. 울고 고집을 부린다고 해서 부모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면 아이의 떼쓰기는 점차 줄어든다. 반대로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질러 원하는 것을 얻게 된 아이라면 떼쓰기를 멈출 리 없다. 아니 떼쓰는 행동은 점차 늘어난다. 대부분의 아이는 타인의 감정보다 자신의 욕구 충족이 훨씬 중요하다. 부모가 힘들어 하는 것을 알더라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훈육의 기본인 '무시하기'에 대해 대부분의 부모들이 이제는 알고 있다. 물론 실천은 쉽지 않다. 아이는 정말 듣기 괴로운 소리로 울고, 심하게 울면 위아랫집에서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도 된다. 그저 가만히 두고 부모는 다른 일을 해서 아이의 울음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음을 보여 줘야겠지만 쉽지 않을 떄가 많다. 그래도 요즘은 부모들이 원칙을 지켜 행동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것을 알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작은 귀마개도 준비하고, 이웃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며 미리 양해를 구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울지말라고 위협하거나, 등짝을 한 대 때려서 멈추게 하던 시절에 비하면 많이 발전하였다. 감정을 강제로 멈추게 하면 일이 복잡해지고 오히려 문제는 지속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무시하기' 기법을 적용할 때와 적용하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다. '무시하기'는 불안으로 인한 울음에는 적용해선 안 된다. '무시하기'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집을 부리는 경우와 갖고 싶다는 자기 생각(순간적 집착)을 전환하지 못하는 경우에 적용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의식적인 것이고 후자는 무의식적인 것이지만 무시하기 기법은 두 가지 경우 모두 새로운 학습을 유도할 수 있다.

불안은 이와 다르다. 불안한 상황에서는 학습이 이뤄지지 않는다. 강렬한 불안 감정에 휩싸이면 새로운 경험에 대한 학습이 어렵다. 그저 불안만 강화된다. 아이가 우는 것이 불안에 기반한 것이라면 일단 불안을 완화시켜줘야 한다. 불안을 완화하고 진정시킨 상태에서 행동 수정을 시도해야 한다. 아이의 불안을 장시간 진정시키지 않고 끌고 가는 경우 아이는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 자기에 대한 믿음도, 외부 세계에 대한 믿음도 약해져 불안이 가중된다.

아이의 울음이 불안에서 출발한 것인지, 자기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떼쓰기인지 구별하기란 크게 어렵지 않다. 맥락 상 대부분 답이 있고, 아이의 평소 특성을 감안하면 된다. 마트에서 장난감을 이미 하나 챙긴 다음 다른 것도 갖고 싶다고 우는 것이라면 욕구 충족을 위한 떼쓰기다. 반면 부모가 어디 다녀올 테니 혼자 있으라고 했을 떄 울면서 매달린다면 불안이 원인이다. 물론 구별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유치원을 갈 때 가지 않겠다고 울며 떼를 쓴다면 이것이 분리 불안인지, 집에서 더 놀고 싶어서 고집을 부리는 것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 아이의 기질과 전후 사정을 살펴봐야 한다.

게다가 기질적으로 불안이 많은 아이라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이 아이들은 고집을 부리는 떼쓰기를 할 때도 불안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부모의 거절을 단순한 거절로 보지 않고 자기를 내치는 것이라 해석하고, 앞으로도 계속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까지 끌어온다. 이 경우 부모가 '무시하기' 기법을 사용하면 통상적인 경우와는 다르다. 자기 스스로 불안을 다루지 못하므로 아주 길게 운다.

기본적인 원칙은 마찬가지다. 불안은 달래주지만, 잘못된 욕구는 조른다고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불안하면 안아주고 네게 관심이 있음을 표현하지만 그럼에도 잘못된 욕구는 들어주지 않는다. 네 말을 들어줄 수는 없지만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물론 아이는 힘들다. 부모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곁에 있다 보니 계속 조르고 싶다. 그런데 졸라도 들어주지 않으니 야속하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시간이 제법 걸린다. 불안을 더 깊게 하지 않고 넘기려면 부모도 피곤하다. '무시하기'는 떨어진 채 무시하면 되는데, 옆에 머물면서도 욕구를 채워주지 않고 버티는 것은 감정 소모가 더 크다.

특히 불안이 높은데, 욕구도 큰 아이는 참 힘들다. 부모들은 진이 빠지기 쉽다. 한 가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그 아이들은 장차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극심하지 않다면 불안은 성취에 도움이 된다. 욕심도 마찬가지다. 두 가지를 모두 가졌다면 다른 아이들보다 높은 성취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야기가 당장 힘든 부모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올림픽이 벌써 마무리로 달려간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은 올림픽이었는데, 지금은 다들 즐기는 분위기다. 이왕 하는 올림픽 재밌게 즐기면 그게 남는 것이다. 올림픽은 아이들에게도 흥미가 높다. 상당수의 아이들이 시합이나...
21/02/2018



올림픽이 벌써 마무리로 달려간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은 올림픽이었는데, 지금은 다들 즐기는 분위기다. 이왕 하는 올림픽 재밌게 즐기면 그게 남는 것이다. 올림픽은 아이들에게도 흥미가 높다. 상당수의 아이들이 시합이나 경쟁에 본능적으로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올림픽을 열심히 보는 아이들과 같이 나눌 이야기도 많다. 아이들과 나눠볼 이야기를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 이상화 선수와 고다이라 나오 선수의 선의의 경쟁과 우정. 둘은 금메달을 두고 여러 차례 경쟁하는 사이지만, 상대가 멋진 레이스를 펼치길 응원하고, 상대의 승리을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진정한 승리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는 운동 종목을 사랑하고, 자신과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마침내 스스로 만족스런 경기를 하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경기에서 이기지 않아도,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면 챔피언이다.

두 선수는 그간 여러 차례의 국제 대회에서 만나왔다. 물론 둘은 늘 경쟁자였지만 함께 경쟁하면서 인간적으로도 친해졌다. 서로 연락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보내고, 취미를 나누며 따뜻한 정을 나눴다. 라이벌이지만 더 없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경쟁한다고 꼭 싸우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경쟁자야말로 내게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 내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잘 모르는 중요한 진실이다.

둘째,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이들은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고, 고작 두 골밖에 넣지 못했다. 아이들은 지는 것도 싫어하고, 골을 넣지 못하면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곤 한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멋진 올림픽 시즌을 보냈다.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다들 눈물을 흘렸다. 슬퍼서 흘린 눈물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했고, 함께 노력하며 보냈던 시간이 감격스러웠기 때문이다. 온갖 복잡한 말들이 많았지만 이들은 거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 치열하지만 따뜻한 시간을 보냈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다. 그러면 충분하다. 삶에서 행복도, 만족도 꼭 승리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셋째, 여자 컬링팀. 국민적 관심이 모이고 있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음도 알지 못한다.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핸드폰도 스스로 내놓고, 컴퓨터도 보지 않는다. 컬링 종목 자체가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취미 생활로 시작한 운동이지만 이들은 쉽게 만족하고 멈추려 하지 않았다. 더 잘 하고 싶었고, 더 멋진 경기를 하고 싶었다. 서로를 응원하며 그 끝이 어딜지는 몰라도 가보려 했다. 그리고 지금 메달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을 더 멋지게, 더 잘 해보려 하는 마음은 참 아름답다. 어쩌면 기대하지도 않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지도 모른다.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더라도 그 시간은 참 아름답다.

넷째, 선수들의 스포츠맨십. 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은메달을 딴 차민규 선수는 올림픽 신기록을 냈다. 그런데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검지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며 '쉿'하고 조용히 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음 선수들의 시합에 방해가 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덕분에 차 선수의 다음 조에서 뛴 호바르 로렌첸은 차 선수보다 0.01초 빠르게 들어왔고 1위가 되었다. 차 선수가 흥분해서 관중들의 반응을 계속 유도하고 경기장 분위기가 안정되지 않았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우승을 위해 그런 분위기를 유도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차 선수는 하지 않았다. 이것이 스포츠맨십이다. 같은 모습을 일본의 고다이라 선수도 보여줬다.

여자 크로스컨트리스키에서 노르웨이의 비에르엔 선수는 마지막에 역전을 허용하여 미국 선수에게 우승을 내주었다. 하지만 그는 결승점에 누워 울고 있는 미국 선수에게 바로 다가가 축하를 해주며 끌어 안았다. 자기를 역전해 우승한 선수에게 깊은 축하를 전해준 셈이다. 이기고 지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함께 멋진 승부를 만들어냈음에 기뻐하고 서로를 격려할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가장 멋진 인간의 모습이다. 아이들은 이런 장면들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이, 영웅들이 이런 모습을 보일 때 감동하고 따라 배우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번 올림픽에서 멋진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선수들은 아이들의 진정한 영웅이다.

다섯째, 수많은, 어쩌면 모든 선수들의 이야기다. 선수들은 지난 4년 간 스스로를 절제하면서 이 시합을 위해 달려왔다. 이 한 순간 자신의 최선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쉽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도 먹지 않고, 하고 싶은 것도 하지 않고, 아름다운 경기를 하기 위해 절제해 왔다. 다들 인터뷰에서 하는 말이다. 이제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사우나도 가고, 아무 생각 없이 쉬기도 하겠다고. 아름다운 것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면 절제하는 힘이 필요하고, 한계를 넘어서려는 각오가 필요하다.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름답기란 어렵다. 쉽게 만들 수 있다면 흔하기 마련이고 흔하다면 아무래도 감동이 덜하다. 물론 유아들에게,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절제와 노력을 강요한다면 무리한 일이다. 다만 그저 선수들의 아름다운 퍼포먼스 뿐 아니라, 그 노력 역시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말해주는 것은 가치가 있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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